2023년 10월 13일(금)
이종민 명예교수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무대 한편이 밝아오면서 요령소리가 아득하게 다가온다.
하얀 소복 차림의 요령잡이가 상여소리 앞소리로 행렬을 이끌자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이
뒤따르며 뒷소리를 받는다.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음악도 그렇지만 무대 위에서의 동선(動線)까지 꼼꼼하게 계산한
기획연출이다. 공연 전체에 대한 소개 후 무대 전환을 위한 기다림도 없다. 이런 등장 연출로
청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떤 경건한 제례의식에 참여한 숙연함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세계소리축제의 한 모범적 전형과 만났다. 한국-캐나다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리-오리엔트](“re-Orient”) 얘기다.
소리축제의 정체성에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판소리를 중심으로 세계의 다양한
목소리 음악(vocal music)을 모아보겠다는 애초의 취지까지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판소리를 어떻게 결합 배치할 것인지, 목소리 음악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등의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적지 않게 당황하게 된다. 판소리는 물론 세계 민속 음악에
대한 내공이 동시에 깊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연주형태를 기획하기 보다는
기왕의 연주단과 음악을 단순 소개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음악감독의 판소리에 대한 이해가 넓고도 깊었다. 무대가 5개의 연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판소리 다섯 바탕의 ‘눈대목’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 [심청가]의 ‘상여소리’
[적벽가]의 ‘새타령’ [수궁가]의 ‘상좌다툼’과 ‘범 내려온다’ [춘향가]의 ‘갈까부다’와 ‘어사출두’
그리고 [흥보가]의 ‘박타는 대목’이 그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동양의 오방(동서남북중) 개념까지를 염두에 두었다는 점이다.
특이한 것은 시작이 죽음(상여소리)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종시(終始)의
사상이 배어 있다. 축제 마당이 죽음으로 마무리될 수는 없다. 죽음으로 끝나는 삶에는 전쟁의
아픔(새타령)도 있고 잔치의 흥겨움(범 내려온다)도 있으며 이별과 만남의 옥신각신
(갈까부다와 어사출두)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관객들과도 어우러지는 잔치마당(박타령)으로 마무리 된다. 마지막 박타는
대목에서 박에서 쏟아져 나오는 복(福)을 연주에 참여한 악기들의 화려한 솔로연주로 대신한 것은
특히 기발하다. 별도의 연주자와 악기 소개를 건너뛸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청중들과 흥겹게
]주고받는 모습은 판소리 마당의 분위기를 제대로 재현해내고 있다. 그렇게 청중들의 카타르시스를
최고도로 끌어올려 환호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못지않게 눈여겨 볼 것은 각 연주의 완성도다. 판소리와 페르시아 음악이 병렬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눈대목의 내용이 때로는 오래 전 페르시아의 시와 어우러지고
(이 부분에서 아쉬움이 조금 있다. 이 시노래의 내용이 화면을 통해 자막으로 전해질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는 안성맞춤의 대금이나 북장단은 물론 세타르, 카눈, 톰박 등의 악기 연주와
다투듯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세계 순회공연까지 준비하고 있다니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세계소리축제의 위상도 높이고 판소리의 세계적 확산에도 크게 기여했으면 참 좋겠다.
이종민 명예교수는,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로 퇴임 후 완주인문학당을 중심으로 인문학 확산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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